일본 생활 15년 헛살았네

헛살았어

이번 주는 이코노미스트말고 닛케이 비지니스(日経=일본 경제신문 발행 주간지) 기사 특집입니다. 믿기지 않을 내용이 나왔어서. 내가 이걸 보고 와 일본 생활 15년 헛살았구나, 내가 일본을 몰라도 너무 몰랐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니깐.

아래 표로 설명드립니다. 1994년과 2024년, 왼쪽부터 생활 만족도, 가운데 행복감, 오른쪽 재미있다 신난다 느낌 정도를 젊은 세대들에게 조사. 색깔은 주황색 진할수록 아주만족 > 어느정도 만족 > 회색은 그냥그저 > 짙은 회색 불만족 > 검은색은 죽고파요

2024년 지표가 더 올라갔어. 이게 말이 돼???!?!?!?

1994년 일본 1인당 GDP: 약 4만불 vs 미국이 2만6천불. 80년 말에 부동산 거품이 꺼지기 시작하면서 일본경제 나락으로 빠지게 되는데 1994년만해도 아직 일본은 미국보다 1.5배 더 잘 사는 세계 으뜸 부자나라였다고.

문제는 그 후, 우리도 줄기차게 들었던 잃어버린 10년 잃어버린 20년 이제는 잃어버린 30년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데 일본은 전성기를 회복 못하고 인구 감소, 생산성 감소, 산더미 같은 부채 증가로 0%대의 거북이 성장을 하고 있는 거, 다 알고 계시죠. (아래 표는 IMF 집계)

그런데도 조사 결과는 요즘 젊은 애들이 94년 젊은 애들보다 더 행복하다는 것이에요. 왜, 도대체 왜? 정말로 돈이 다가 아니었구나, 사토리(悟り=깨닫다) 세대 일본인들에게는!

다음 표를 보면서 정답 찾아갑시다. 표 제목: 삶의 보람, 충실감을 느낄 때는 언제?

1994년 1위부터: 친구(들)하고 같이 있을 때, 취미 & 스포츠등 좋아하는 것에 빠져 있을 때, 친한 이성하고 있을 때, 다른 사람을 위해 도움 될 때, 그리고 5위가 가족하고 있을 때.

2024년 1위부터: 친구(들)하고 같이 있을 때, 취미 & 스포츠등 좋아하는 것에 빠져 있을 때, 가족하고 있을 때(3위), 다른 사람을 위해 도움 될 때, 그리고 5위가 친한 이성하고 있을 때.

30년 사이, 가족하고 있을 때가 예전보다 훨씬 더 의미있고 만족감 있는 시간이 된 것이죠. 특히 모녀관계의 경우 그 돈독함이 더욱 진득해졌다고. 아래 표: 나를 진짜로 제일로 숨김없이 보여줄 상대(모든 것을 다 털어놓을 정도의 상대). 빨간색 아바이, 보라색 엄마, 하늘색 동성 친구, 파란색 이성 친구(애인 아니고 남사친 여사친). 보라색 엄마 우리 엄마가 확 늘어났지요?

아래 표: 자신의 가치관이나 사고 방식에 제일 영향을 주신 분. 색깔 구분 위와 똑같음.

내가 일본 살면서 느끼기로는, 우리 세대(50대 전후)가 일본의 대략 반 세대 앞, 즉 65~70세랑 가치관이 비슷했어요. 내 아래 세대는 일본이랑 거의 같은 세대로 가는 것 같고요. 위의 표, 2024년 동시대를 사는 한국과 일본의 보라색 테두리 안, 특히 모녀관계는 어떨까요? 닛케이가 짚어 본 예 + 내 주변의 예로는:

  • 엄마 옷 같이 입고 패션 코치 받는다

  • 장보러 같이 다닌다

  • 온천 여행 / 유럽 여행 같이 간다

  • 시골에 할머니 & 증조할머니 케어하러 같이 간다

  • 취직/이직 관련 조언 받는다

이 기사, 읽으면 읽을 수록 어떤 얘기 하고 싶어지는 거 같애? 1994년 엄마와 지금 엄마는 다른 엄마가 된 엄마인 것 같지요?

Let’s talk about 1994 first: 일본은 아직도 최전성기야. 남자들은 종신고용 수출기업 다니며 돈 찍어내느라 바쁩니다. 해 뜨기전에 밖에 나가 막차타고 돌아옵니다(실제로 우리 장인 얘기임). 삐약삐약 어린 것들은 아빠 품 기억할 것이 별로 없어요. 애들 자라나는데 이것저젓 챙겨줘야 하니 엄마는 주로 집에 있습니다. 우리나라만큼 심한 가부장적 사회이니 1994년의 일본 엄마들은 집주인께서 벌어오는 돈으로 알뜰하게 씁니다. 오늘 반찬 뭐하지, 내일 애들 도시락 뭐싸지 생각하는게 우선이라 세상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잘 모릅니다. 이걸 그대로 반영한 만화가 아따신치(あたしンチ)에요. 정확히 1994년부터 방영. (와 근데 30년 지난 지금 엄마 역할이 크게 바뀌었는데도 아직도 옛날 포맷 그대로, 밥짓기 빨래하는 엄마 모델로 방영중이야. 여성단체에서 왜 항의 안 하나 몰라)

2024년 엄마 얘기 하기 전에 아래 표 보고 갑니다. 막내 15~17세를 둔 세대주의 엄마 취업비율: 짙은 주황 풀타임, 주황 파트타임, 옅은 주황 기타 형태의 취업, 회색은 전업 주부. 2002년 33% 전업주부. 아마 1994년은 40% 이상이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2019년은 표 오른쪽, 19.8%가 전업주부, 그리고 지금 2025년은 비율 더 줄었겠지요.

엄마의 취업률 증가. 대학나온 엄마. 똑똑하고 센스 있어진 엄마. 구체적으로 설득력있게 어드바이스 해 줄 수 있는 엄마. 2024년의 엄마는 이렇게 하여 아들 딸들의 존경을 받는 롤모델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아들 딸들과 채팅한 엄마 어드바이스 사례들도 소개되어 있는데 아래에 딸과 엄마 편, 발췌합니다. 제목: 20대 대학생 딸의 취업 지망이유서 첨삭 지도해주는 엄마

: “대학교 2학년때 혼자 미국가서 정치 사회의 차이점을 배웠다. 여기서의 경험을 토대로, 저는 태어나 자란 xx시에 도움되는 인력이 되고자 강하게 다짐했습니다.” 엄마 도와줘

엄마: “반 년동안 근무하였다”, “힘을 다했다”, “그리고 기획을 세워 실행에 옮기며 달성감도 느꼈다”, “학생 중심의 학교 만들기를 목표로 학생회활동도 역임하였다” 이렇게 바꾸면? 그리고 “혼자 도미(渡米)하여”로 해봐. (참고로 일본은 미국을 美國이라 안 쓰고 쌀 미자인 米國이라 쓴다)

: 엄마 대박

이런 사회 현상을 뒷받침해 주는 것은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여성의 진학률 증가. 일본의 경우 아직 남성이 진학률 더 높지만 미국, 영국, 한국 등은 이미 여성 진학률이 남성보다 높다고 합니다.

기사 내용 쭉 읽어보니 우리 남자들은 아이하고 돈독한 관계 만드는데 기여한게 별로 없네? 그래서 닛케이가 묻습니다. 니 아들 딸들한테 생일 선물 줘 봤는가? 내 얘기 하면, 내 일생에 생일 선물 아버지한테 받아 본 적 없습니다. 그리고 내가 아빠가 되어서 선물 내 아들한테 직접 준 적 없습니다. 다 애 엄마 통해서 갔지. 만일 우리 형제님들도 나와 같다면 핸드폰 잠시 내려 놔, 벽 보고 반성합시다.

일본 얘기 나와서 아마 경험 하신 분 거의 없을 동네 골프 연습장 사진 올릴라 합니다.

우리집에서 자전거타고 20분가면 있어요. 센가와(仙川) 고르후(golf) 연습장. 주택가 한 켠에 망 쳐놓고 장사해요. 오시는 분들 행색을 보면 꼭 동네 사우나 오듯 간편한 차림이요. 벤츠타고 오는 사람 있는가 하면 건너편 주택에 빨래 말리고 걸어나온 듯한 아줌마 아저씨들도 있어요. 골프채는 미즈노 드라이버와 Srixon(스미토코 고무 계열사) 7번채를 각각 100엔 내고 빌릴 수 있고요, 물론 가져와도 됩니다.

카드 결제 되냐고? 어딜, 그런게 어딨어 일본 변두리 동네에 ㅎㅎ. 여긴 꼭 새마을 운동 끝나고 딱 거기서 세상 절단된 느낌이여. 700엔 넣고 골프공 나오는 기계 하며. 그래도 고향 온 것 같은 이 푸근함, 날씨도 선선해지고 여기서 딱히 더 바랄 것 없으니 세상아 좀 등지고 살면 어때.

오늘 첫 방문이라 땅볼 60개 날리고 사요나라 장타 한 번 친 뒤 자전거타고 돌아와서 이 글 씁니다. 아마 이제 주말마다 갈 것 같아요. 아리가또 동네 골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