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보내며

Why am I sending newsletters to you

2025년 3일 남았습니다.

일본은 1868년 메이지 유신을 계기로 서양 세계에 문을 활짝 열어 이른바 탈아입구(脫亞入歐: 아시아 탈피, 구라파 편입), 즉 양(洋)것은 뭐든 열렬히 받아들이자는 마음 자세로 제도와 개혁을 바꾸기 시작하였는데, 그 중 하나로 지금까지 한자 문화권에서 써 왔던 음력 명절들을 다 양력으로 바꿔버렸지요. 그래서 설날(1월 1일), 단오(5월 5일), 칠석(7월 7일), 추석(8월 15일), 동지(12월 12일) 일본에서는 다 양력입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신정 쇠는 나라에 살고 있으니 그랴요, 우선 인사부터 올리겠습니다.

내년 2026인데 틀렸지롱~ 네 네 알아요. 페이스북에서 옛날 사진 찾다가 이게 턱하니 나오더라고. 사진 이쁘게 찍혔으니 새해 인사겸 올려드리면서, 이번 뉴스레터는 어떤 주제를 실을까 생각해보다가 이 사진과 관련된 얘기를 좀 해 드릴라 합니다. 뭐 이코노미스트 특집 전세계를 흔든 10대 사건, 이런거는 네이버한테 물어보세요.

사진은 제가 2017년 12월 31일, 롯본기의 Pink Cow라는 어느 바에서 송년 재즈 라이브 & 잼(jam) 세션을 진행했을 때 누가 찍어준 것입니다. 아마 그 날 왔던 세네명 고객 중의 하나가 찍었을거야. 아, 아니면 바의 주인 Tracy였나? 트레이시는 금발 미국여자로, 롯본기 바와 클럽들을 운영하는 외국인들, 특히 흑인들 사이에서서 더더욱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캘리포니아에서 미대를 나왔고, 일본 남자와 결혼해 도쿄에서 둘이 같이 레스토랑을 운영했었는데 남자와는 결별, 레스토랑도 따라서 접은 후, Pink Cow라는 바를 열었지요. 거기 주방장이 Burrito를 기가맥히게 잘 만들어 한 때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명성이 높은 것으로 압니다만 트레이시는 제가 핑크 카우 갔을 때마다 한 손에는 와인, 또 한 손에는 담배가 쥐어져 오늘 장사 적당히 꼴리는 대로 할라고, 식의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손님들을 대하니 음식이 맛있어도 서비스가 엉망이라 사람들의 발길이 점차 뜸해지기 시작하였고, 목 좋은 곳 롯본기 코너에 이런 바를 그냥 둘 수 없다는 (비공식) 유흥업 업주 흑인 연합회의 탄식 어린 조언을 받아들여 결국 세네갈 출신의 밤업소 전문 경영인에게 경영을 위탁하게 됩니다. 한 편 흑인 업주는 손님을 끌려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 지금까지의 경영방식을 과감히 탈피해 제가 당시 진행했던 뜨내기 재즈 밴드같은 아마추어 악단은 딱 밤 10시까지만 진행시키고 시계종이 땡 땡 울리면 1층이었던 바의 거튼을 닫아 외부 조명을 차단, 안은 더 어둡게, 나이트 클럽에서 쓰는 반짝반짝 돌아가는 은 구슬 같은 거 천장에 하나 매달고 지금부턴 암흑 세계, 가즈아 Welcome to the Dungeon 분위기로 무대를 꾸몄습니다. 그리고 화장실 벽에 영어와 일본어로 적힌 경고문도 꽂아 놓지요: 주사 바늘 금지.

트레이시의 피와 땀과 알코올과 니코틴이 서린 브랜드 Pink Cow, 이렇게 흑형들에게 나락의 세계로 넘어가는 꼴을 스스로도 보기에 안타까웠던지, 몇 달 지나 그녀는 바의 소유 및 경영권을 완전히 매각하고 상표만 그대로 들고 나와 롯본기 목 좋은 코너로부터 한참 떨어져 아카사카의 후미진 골목 어느 건물의 지하, 여기서 한 층 더 내려간 B2F에 같은 이름으로 바를 다시 열었는데 이건 뭐, 오픈 한 지 얼마 안 되어 가 봤더니 세상에, 인류의 발걸음이 미치지 않을 것 같은 이 어둠 컴컴한 지하공간에 줄여 줄여 스페이스는 과거의 절반도 안 되게, 탁자 세 개 놓으니 숨이 턱턱 막힐 법한 공간이 되어 버렸더라고요.

그래도 어디야, 나의 밴드를 불러준다는데 우리같은 아마추어 재즈스쿨 학도 + 오합지졸 직장인 오타쿠 구성의 재즈 쿼텟이 누군가의 앞에서 연주를 할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이건 져버릴 수 없는 기회라고 생각되어, 그리고 나중에 기회가 되면 찬찬히 말씀드리겠습니다만 당시 2017년의 나는 몇 년전 아랍세계로의 전대미문 황태자식 주재원 생활을 마치고 도쿄로 돌아와 그렇지 않아도 정 못 느꼈던 이 도시, 이제 아예 쳐다보기도 싫었지만 그렇다고 내 생활 터전이 여기에 있는데 나몰라라 떠날 수도 없어 삶의 의욕 수치가 제로 미만을 하회하던 시기였으므로 그 가운데 나를 구원할 한 줄기 빛은 오직 재즈 뿐이라 여겨, 연주비를 주던 말던, 고객이 오던 말던, 매 주 한 번씩 Pink Cow의 무대에 오르는 것을 독실한 크리스찬 예배당 가듯 절대 빠질 수 없는 주간 행사로 지내고 있었습니다.

무대에 오른 그 날도 우리는 혹시나 누구 한 명 오나, 인터넷에 광고는 냈지만 영 자신이 없어 오늘도 파리만 날릴것 같은 우려속에 리허설을 진행중이었는데 문 비스듬히 열고 여기 사람사는 곳인가 염탐하듯 슬쩍 고개를 내비친이가 있으니, 와 딱 한눈에 이 분 마이클 잭슨인가 싶었다고.

벌씨 칠 년 전이니 이름은 잊어먹었수. 그냥 잭슨 상이라 합시다. 혼자 내왕하신 이 분은 우리 무대와 바로 다섯 발짝 떨어진 탁자에 앉아 메론 소다를 쪽쪽 빨아마시며 우리의 레파토리를 경청하였습니다. 뭐 재즈 들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누구나 다 아는, 이른바 Jazz Standards로 선곡한 레파토리는 대략 Fly me to the moon, Autumn Leaves, My Funny Valentine 같은 곡들이에요. 그리고 우리의 무대 진행 방식은 1부에 재즈 몇 곡 올리고, 잠시 휴식 후 2부는 관객 중에 악기 가져오신 분 또는 노래 하실 분 무대에 올려 jam session을 진행하는 형태였습니다. 잭슨 상은 말 없이 1부를 지켜보더니만 2부가 되자 오늘 준비한 곡이 있다며 무대에 등장하였고, 그 때 찍은 사진이 페이스북에 남아있길래 위에 보여드린거에요.

와 만약에 마이클 잭슨 Billie Jean이나 Beat It 부른다고 하면 어쩌나, 악보도 없는데, 마음 졸였던 우리 밴드는, 그가 재즈 스탠다드인 Summer Time을 요청해 오기에 어휴 다행이다 싶어 보통 남자 키(key)인, 아마 Am였나 싶지? 그렇게 바로 세션을 진행했습니다.

날도 어두운데 거기에 검은 안경을 걸치고 무대에 오른 잭슨 상, 우리 밴드가 보낸 눈 신호, 손 신호가 제대로 안 보였는지 실수를 연발하며 처음 등장시의 강렬한 카리스마에 비해 적잖이 실망스런 퍼포먼스로 무대를 마무리 했습니다만 다음 주에도 또 온다기에 자, 그럼 차주엔 제대로 한 방 오네가이시마스, 하며 그 분을 돌려 보냈던 기억 있습니다.

한 주가 지나 이 분은 약속 대로 또 물끄러미, 쥐도 새도 모르게 조용히 입장하여 우리 1부 순서를 소다 빨며 듣다가 2부가 되자 다시 무대에 올랐는데 그 한 주 사이에 실력은 더더욱 떨어져 그 날은 무슨 노래를 했는지 아예 기억도 안 납니다만 여기에 그를 찍은 사진이 한 장 더 있기에 보여드립니다.

무대가 끝나고 관객들을 돌려보낸 후 우리 밴드가 악기를 정리하며 그 날을 회고 하기를, 그 잭슨 상 재미있는 사람일세, 좀 더 연습하고 앞으로도 자주 와 줬으면 좋겠어, 하고 생각했지요.

그 후 며칠이 지나, 나는 잭슨 상에게 한 통의 이메일을 받습니다. 그 분의 고백으로, 본인은 학생 시절부터 히끼코모리요, 외부와의 관계에 서투름과 두려움으로 인해 벽을 쌓고 살아왔는지라 세상살이 낙이란 것이 없었는데 우연히 알게된 재즈 세션 공고에 갈까 말까 수십번을 고민하다 큰 마음 먹고 와 봤더니 나를 따뜻하게 대해 주더라. 재즈에 대해 아는 것 없고 배울 것 투성이지만 격려의 말로 응원해주니 본 메일을 통해 진심으로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라고.

잭슨 상 얘기는 여기서 끝입니다만 저의 오늘 뉴스레터 제목 ‘한 해를 보내며: 부제 Why am I sending newsletters to you’를 달아놓고 저의 단상(斷想)을 피력하느라 이 분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본 뉴스레터, 이제 2년이 넘어갑니다. 이제 구독자가 백여분에 이르렀어요. 올 한 해를 마무리하며, 스스로에게 물었지요. 이 분들이 왜 나의 뉴스레터를 구독하는가. 나는 이 분들에게 구독의 댓가로 무엇을 드릴 수 있을까? 이코노미스지 발췌의 잡(雑)지식이 제 뉴스레터의 근간인데, 이제 웬만한 정보는 AI한테 물어보면 만물박사님 수준으로 금방 정리해 주잖아. 그렇다면 정보 제공말고, 내가 구독자에게 도대체 뭘 제공할 수 있을까. 이 생각을 며칠간 하다가 잭슨 상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지요. 케빈 상, 휴머니티를 전해줘 봐.

Boys and Girls, Happy New Year 2026.

PS) 지금은 그만 뒀지만 우리 밴드가 연주한 재즈 스탠더드는 유튜브에서 Sharpened Flat치면 나옵니다. 거기에 Playlist걸어놓고 상념 깊은 연말, 수면제 대용으로 틀어놓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