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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해력과 수리능력으로 본 백문이의 사려깊음
독서 강국 일본인 본받자
일본 생활 16년차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여기 뿌리 내린 한국 지인들 보면 일본 여전히 좋아라들 하지요. 치안에, 청결에, 친절에, 정직한 국민성에, 감동할 부분 여전히 많은데 나는 다른 것들만 쳐다보고 있어서 오늘 하루도 어찌하면 이 나라 떠날 수 있을 것인가, 도서관에서 prison break ㅎㅎ 탈출 궁리중입니다만.
일본에 있는 도서관이니 내 좌석 주위를 둘러싼 책장을 보면 일본 책들이 주로 꽂혀 있지요. 동네 도서관들은 대략 서재 두 배분 정도의 분량으로 영어 원서들도 갖춰놓고 있긴 합니다. 제가 신분이 호주 국민인 관계로, 거기에 회사에서 영어를 많이 쓰므로, 저는 거의 영어책 위주로 빌려 읽는데 지금까지 몇백 권을 읽었지만 아직도 모르는 단어 나옵니다. 대략 두세 페이지에 하나씩. 이거는 내가 매일 받아보는 이코노미스트 뉴스레터에서도 마찬가지. 읽어도 읽어도 모르겠어, 어떤 문장들은.
이게 어쩌면 나이 들어 발생하는 문해력 저하와 관계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이코노의 차트를 하나 봤습니다. 표 내용: 16~65세 사이 OECD 각 국민 대상으로 초등학생 수준과 비교했을 때 문해력(좌측)과 수리능력(우측)이 열등한가(빨간색), 우월한가(파란색)을 나타낸 그래프.

와 일본인들은 역쉬 사리분별 능력이 뛰어난 종자들이군요!
음… 우리나라도 IQ 높다하지 않았어? 생각보다 순위가 낮은 것이 의아합니다만 아마도 젊은 연령층만 조사했다면 세계 몇 등을 다툴 수준이었겠으나 연령층이 높아지면, 아시다시피 우리 세대는 중진국에서 태어났고요, 나의 선배들은 박정희 시절 이전에 태어나 못입고 못먹고 자란 분들도 꽤 있을 것이요. 그것이 전체 통계에 반영되다보니, 아마 싱가폴도 비슷한 결과라, 중위권이 된 것이라 봅니다. 말 잠깐 돌려 최근에 본 싱가폴 관련 영상에서는, 국가가 독립을 맞던 1965년에 이광요 총리가 눈물을 흘리며 국민 담화를 진행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절반에 가까운 인구가 문맹이요, 말레이시아로부터는 팽 당하였고 맨땅에 삽질해봐야 이렇다할 자원도 하나 안 나오는 이 나라 어찌 먹여살릴 것인가, 리더로서의 고뇌가 눈물 속에 맺혀있음을 봅니다. 그런 나라가 지금 전세계 으뜸 국가 되었다잖아, 내 참. 싱가폴 얘기는 조만간 더 자세히 알려드리고 싶어요…
다시 통계로 돌아옵니다. 혜택 못 받은 윗 세대가 순위를 흐려놨다고 동정할 게 아니네, 아래 표를 보면? 그래프 내용: 2012년, 2014년, 2017년 통계와 비교했을 때 2023년 조사때 측정된 문해력 증감도. 우리나라 어떻게 된거야, 마이너스 20% 가까이 되네?

이코노에서 꼽은 문해력 저하 원인은 이민자 유입으로 걔네들이 다른 나라와서 그 나라 말 익숙하지 않으니 통계 점수 떨어짐이 하나요, 다른 원인으로 노령화를 꼽았는데, 여기서 우리나라나 일본은 이민자 유입에 아주 소극적이며 노령화도 고속 진행이니 한 배를 탄 것이나 다름없는데 일본은 통계에 안 나오네? 하긴 일본인들은 말하기 보다 듣기를, 쓰기 만큼 읽기를 우선하는 민족이라 전 국민 모바일 삼매경에, 독서는 논술 때문에 하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보다는 더 사려가 깊긴 하다고, 인정하기 싫어도 통계가 증명해주고 있네요.
그래서 이번 글 남은 분량엔 독서 얘기를 좀 할려고요.
군대 시절에 신백문이라고 고참이 있었어. 참고로 나는 1996년 8월에 입대했고요, 카투사(KATUSA)로 갔습니다. 당시에는 여기 가려면 영어와 국사, 윤리 시험에 합격해야 했고, 1년에 1500명 뽑았습니다. 나같이 재수 안 한 이공대 생이 이 시험에 합격하려면 가능성이 무지 낮으므로 나는 시험 전 여름방학 한 달을 고시원에서 살았어요. 실제로 동기생들은 대략 30~40% 서울대, 비슷하게 30~40% 연고대, 그리고 나머지가 자투리 대학교들이었고, 또 동기생의 절반 이상이 재수 삼수생들이었지. 국사와 윤리는 책 거의 외우는 수준이었으니까.
이 신백문이라는 고참은 한림대 출신이야. 인터넷에서 안 찾아봤습니다만 학교가 아마 강원도 원주에 있을 것이요. 그의 부모님은 화전민(火田民)이야. 못 들어봤지 MZ세대들아 ㅎㅎ 화전민은 말 그대로 불 火자에 밭 田자, 그리고 백성 民자, 즉 겨울철 휴경지가 된 밭에 불을 놓아 개경지로 만들고 거기에 농사를 지으며 사는 떠돌이 백성들입니다. 이러니 백문이의 가정 형편은 따로 얘기 안 해도 되겠지요. 농담 삼아, 그 학교에서는 우리 백문이 카츄샤 갔네~ 현수막 걸었을 지도 몰라요. 따라서 신백문이 고참은 당연히 지방의 우수한 인재였음은 두 말 할 것 없었고요, 병영내 생활에서도 평판이 좋았어요. 나보다 1년 먼저 들어왔는데 이미 소문이 자자하더라고. 쟤 백문이, 들어와서 상병 달 때까지 입에서 한 마다도 안나왔어. 우리는 미국식 막사에서 생활하며 2인 1조로 자기 방에서 잡니다. 백문이랑 같은 방 쓰는 고참 왈, 백문이는 책상에 엉뎅이를 박았어. 방 안에서 책만 읽어. 또 들리는 얘기로, 주말에 우리가 집에 갈 때 백문이는 노가다 가서 돈 벌어 들어온다 했습니다.
나는 입대 날짜로 그의 1년 밑이니, 신병 때는 고참들 각 방에 매일 노크하여 고참님 내일 몇 시 어디서 모이시랍니다 등등의 스케줄을 전달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지요. 이 사람 방은 좀 들어가기 싫었어. 무표정한 자세, 내가 뭐라 뭐라 일정 전달하는데 듣는지 마는지, 내 쪽으로 돌아보지도 않다가 위에서 말입니다, 확인하라해서 말입니다, 하고 캐물으면 알았어 꺼져 이 개새끼야 하고 면박을 줍니다.
ㅎㅎ 뭐 군대 생활 다 그렇지 뭐. 자유 없는 세계는 서울대 할애비가 들어와 있어도 매일 입 안에 욕을 달고 다닙니다. 그게 징병제의 단점이지. 육해공군 사병들은 백프로, 거꾸로 매달아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는 그 말 하나만 믿고 입영하는 첫날부터 제대하는 날짜 셉니다.
그 신백문이의 제대를 며칠 앞두고, 우리는 그래도 1년 이상 생사고락 같이하여 선임병 후임병간에 어느 정도 사이가 좋아졌으므로, 그의 입에서 욕도 덜 나와 이 개새끼야가 이 빙신아 정도로 바뀌었을 즈음, 백문이가 나를 방에 불러 책을 몇 권 전해줬어요. 이거 니 읽든지 말든지 해라, 나는 다 놔두고 갈라니까, 하면서.
그때 책을 받았던 것을 근 30년이 지나도록 까맣게 모르고 있었어. 최근에 한국 우리 부모님 댁에 갖다가 오래된 책 정리하는데 낯선 책들이 보이는거야. 처음에는 몰랐지. 아니 내가 이런 책들을 사서 읽었다고?
어느 자연주의자의 죽음 (Death of a Naturalist) by Seamus Heaney
황동규 시집: 물운대 行
김초혜 시집: 꿈길에서
그래서 자세히 살펴봤더니 책 윗면에 이름이 써 있네.

요즘에도 간간이 인터넷에서 찾아봅니다. 신백문 이름치면 뭐 나오나 해서. 아마 창비 같은 출판사에서 수석 편집인하고 있지 않을까 싶어. 제대 후 알게 되었는데 나보다 나이도 한 살 어리다 하대. 그래서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만나게 되면 이 얘기 꼭 해 줄려고: 멍충아 니 책 너무 고맙다.
끝으로 올 해도 우여곡절 끝에 이코노미스트 구독 염가 갱신이 가능해졌습니다. 불철주야 후학양성에 매진하고 계시는 중앙대학교 생명과학과 김학균 교수님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 이 분 천재 교수이니 아들 딸 김 교수 밑으로 보내시고 이코노 정기구독권 우리도 하나 달라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