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털리가 부인이래도 사랑은 해야겠어요

The very topic we wanted to talk about

오늘은 이코노미스트 생활 건강 & 사회 현상 편입니다. 하여 이번 뉴스레터 부제(副題)는 Let’s talk about 어머! 性입니다.

그동안 관련 기사가 몇 나왔었는데 모아뒀다가 알려드리기로 생각하던 차에, 어제 거의 석 달에 걸쳐 읽다가 포기하다를 반복하며 진도 나가던 Lady Chatterley’s Lover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마침내 완독해서, 이 소설이 주는 시사점을 같이 정리하고자 합니다.

이 뉴스레터 현재 대략 서른 명에게 보내고 있는데 연령대는 저보다 띠동갑 밑에서부터 띠동갑 위까지로, 중장년층이라고 해야겠지요. 그럼 다들 소설 제목은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것이지요. 특히 우리 아자씨들, 청년 시절의 우상 실비아 크리스텔 주연의 동명 영화, 엄마 아빠 몰래 비디오가게에서 빌려다 보고 했지요, 맞지?

때는 1920년, 1차 대전 중 부상으로 제대한 귀족 Clifford는 참전 앞두고 결혼한 Connie와 영국 중부의 탄광산업 도시로 귀향하여 정착하게 됩니다. 여기서 아마 내용 떠오르시지요. 클리포드가 이런, 부상으로 하반신 마비(고자)가 되어 평생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되었고, 사정이 이러하니 신혼을 제대로 느껴보지도 못하고 일평생 반 과부 생활로 접어듦에 매일 밤 남몰래 허벅지를 바늘로 찌르며 날을 지새던 코니는, 귀족 계급의 허세와 형이상학적 토론들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하던 어느 날, 산책 중에 친해지게 된 사냥꾼(이라고 합시다. 영어로는 gamekeeper, 즉 귀족들의 사냥 놀이를 돕는 보조원 정도) 멜럿에 자신의 몸과 마음을 맡기게 됩니다.

소설의 작가인 D. H. Lawrence는, 당시로서는 엄청나게 파격적인 단어 선택과 묘사로 문학가와 일반 대중의 찬사와 비난을 한 몸에 받았는데, 예를 들어 이 책이 쓰여진 1928년에 (아마 세계 최초로) 여성 성기 C word를 여러 번 등장시킵니다. 사실 이 C word는 요즘에도 일반 매체나 심지어 남자들끼리의 음담패설에도 거의 쓰여지지 않는 단어로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 미국/영국 내 또래 남자들하고 얘기할 때, ah that word! You mean C U Next Tuesday right? 이런 식으로 돌려 말하는 걸 들은 적 있습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소설은 1960년대까지 영미권에서 금서 처분을 받았으며, 2025년 현재에도 소설의 평가에 관해서는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고 있지요. 독서 SNS 사이트 https://www.goodreads.com/book/show/392480.Lady_Chatterley_s_Lover의 독자평 중에 별 한개짜리 평이 있어 공유함. 그 분이 읽은 책 내용 대략 이렇대요 ㅎㅎ:

Basically, the book can be summed up like this: Blah blah SEX blah blah class blah SEX SEX blah blah class England's economy SEX SEX SEX SCANDAL arguement arguement SCANDAL Vacation time! blah blah blah SEX arguement SCANDAL blah blah the end.

그럼에도 불구하고 Penguin이나 Oxford같은 거물급 출판사에서 아직도 거의 몇 년에 한 번씩 renewal edition을 내면서 출판을 이어가는 이유는, 소설이 주는 사회적, 철학적 의미가 심오하고 예리하여 세대를 거쳐오면서도 영원 불멸 클래식의 위치에 계속하여 남게 되었기 때문이라 봅니다. 예를 들어 여주인공 코니가 사냥꾼 멜럿의 만남을 이어가며 묘사되는 정사 장면에서, 작가는 1차대전 후 화해과 번영을 갈망하는 신(新)질서에 대한 시대적 요구를, 육체적 사랑의 숭고하리만큼 인간적이면서도 계급 질서를 무너뜨릴 정도의 강력한 회복(recovery)과 탄성(resiliency)의 에너지로서 그려내고 있습니다.

뭐래, 뉴스레터 쓴다고서는 독서감상문이 길었네? 왜냐믄 말이오, D. H. Lawrence가 소설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자연치유적이며 반 기계적인 생명 결합의 행위가, 21세기를 사는 지금 반 자연적이고 기계적인 문명의 광범위한 지배로 인하여 해가 갈수록 감소를 거듭하고 있음을 이코노미스트 기사가 증명해주고 있어서, 서두가 길었습니다만 그 연관 관계를 밝혀둘려고 했던 것이에요.

자 그럼 통계를 보기로. 먼저, 실사영화에서의 성(性)묘사 없이 내용 전개되는 빈도수. 갈수록 높아짐.

다음 표. 영화에 쓰는 오락적 요소중, 마약, 폭력, 섹스가 차지하는 비율. 해가 갈수록 점점 무성(無性) 영화화 되어가고 있음.

이런 현상에 대한 이코노미스트의 반론: 인터넷 시대잖아요. 볼라믄 pornhub같은 사이트에서 하드코어로 봅니다. 스토리 같은 거 필요없어요.

영화와 인터넷의 주 소비자인 MZ세대들은 정말 다른 것 같긴 해요. 태어날 때부터 모바일폰과 태블릿이 쥐어졌으니 SNS로 소통하고 MetaVerse에서 생활합니다. 어느 친구분 얘기 빌릴게요. 사촌동생이 친구들하고 시드니에 놀러왔는데, 서로 절친이라고 하는 애들이 밥 먹으면서는 말 한마디 없고 다들 모바일폰에 코 박고 있더래요. 이것이 통계로 이어집니다. Less communication -> Less emotion -> Less erection -> Less ejaculation -> More instant gratification from SNS. 단어 뜻 생각 안나믄 찾아보세요. 인생에 도움됩니다.

우리 중장년층은 MZ세대와 달리 상대적으로 액티브한 생활 하고 있는 것으로 그래프에 그려져 있어요 ㅎㅎ. 표: 과거 5년간 세대별 성병 진단 건수 추이 (영국 사례). 빨간색은 증가, 오렌지는 감소. 표에 나온 단어는 대략 임질, 매독, 성기에 나는 뾰루지 같은 거, 헤르페스(포진) 등등. Chlamydia는 처음 듣는 단어네요.

마지막으로 표 하나 더 갑니다. 평생 만나는 섹파(sex partner) 숫자. 그 다음 작년 섹파. 맨 밑은 지난 달 합방했어요의 비율. 간단히 보면 우리 아시아인들, 동방 예의지국 답게 남녀칠세 부동석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요. (예외: 지난달 합방 했어요에 아시아 여자가 거의 90%, 남자는 훨씬 밑임. 지난 달에 아시아 남자들 죄다 우크라이나로 파병갔나봄)

근데 웃긴게 뭔 줄 아세요? 위 통계 조사 대상 20세에서 49세까지에요. 50세부터는 숫자로 치지도 않아요. 왜, 우리는 이제 50이 되어 플라토닉 러브가 참말로 진정한 사랑이었음을 깨닫고 있으니까요. 다만 65세가 되면 앞의 영국 사례 그래프에서처럼 오뉴월에 갑자기 길길이 날뛰게 되어 비뇨기과 통계에 다시 잡히게 될 지도 모르니 주의하기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