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 다 가는 호텔에는 못 가겠어요

번성하는 럭셔리 여행 업계

이전 회사에서는 어느 부서의 아태지역 관리를 담당했어서 장거리 출장을 많이 다녔었다. 그 때가 좋았지. 아쉽게도 작년 하반기 실직 후, 새로 들어간 이번 회사는 담당 지역이 거의 한국과 일본으로 국한되어 장거리 비행 마일리지 같은 거는 별로 안 쌓이고 있고요, 대신 인천공항과 나리타 공항 면세점 아이쇼핑은 질리도록 한 것 같지. 나리타 공항 면세점,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게 이민 심사대 바로 지나서 나오는 에르메스, 그리고 인천 공항은 25번 게이트 쪽으로 가다보면 나오는 젠틀 몬스터 왕거미 조형물 기억납니다. 물론 얘네들 상점 한 번 들어가 보고 워메 뻔뻔한 인간들 이런 터무니 없는 가격 스스럼 없이 붙여 놓다니, 소스라치며 놀랐던 경험도 기억하지요.

근데 사실 우리 나이 정도 (대략 40대 후반부터) 되면 집 대출 어느 정도 갚았고 애들 과외비 나가기는 하지만 엄마 아빠 둘이 다 벌면 가계 총 수입이 지출을 넘어서게 되는 경우들 생기잖아. 그러니까 1년에 한 번 가족 해외 여행 갈 때 공항 면세점에서 가볍게 지르는 것도 죄스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내가 그랬거든 ㅎㅎ. 그동안 나이키 아디다스 (and 프로스펙스 in old days) 신발만 반 세기 동안 신어 오다가 인천 공한 한 켠에 20% 세일로 나를 위해 전시된 스페인 브랜드 캄페르 Camper (한국에서는 캠퍼라고도 읽는 것 같음)를 지나치며, 살까 말까 한 3년 고민하다가 이번에 눈 딱 감고 결재했습니다.

그래서 나도 이제 좀 럭셔리 안 단 말이지. 때마침 이코노미스트 주말 특집 호화 여행편이 나와 있길래 겸사겸사 소개합니다 (BTW don’t say Camper is not a luxury brand, it proudly is!!! 😅)

위 사진 어느 호텔이게요?

하루 숙박 천만원 이래요. 칵테일 한 잔 5만원. 영국의 Brown’s Hotel이랍니다. 처음 들어봤으요.

와 인테리어 정말 고급지다. 만일 운 좋아 이런데서 숙박하게 된다면 5년 동안 안 쓰던 인스타 계정 다시 부활해서 사진 찍어 올리고 싶다. 인스타 보면 요즘은 개나 소나 명품 백 하나씩은 다 갖고 있고, 동남아 유럽 좋은 데들 다 다니잖아. 하지만 이런 호텔은 못 와봤을 걸?

그게 요즘 부자들의 심리랍니다, accoding to the Economist. 아래 표는 럭셔리 숙박 지출. 색깔 구분: 빨간색은 신규 편입 부유층으로 순자산 14억, 다음 핑크색은 순자산 70억까지. 이 그룹의 럭셔리 숙박 지출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군요. 열심히 사신 우리 선후배 님들이 아마 여기 그룹에 속할 듯 싶네요. 다음 하늘색, 순자산 420억까지. 그리고 파란색은 그 이생 초 부유층.

조용히 부자들은 늘어나는데, 자기 입으로 나 부자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주위 친구, 회사 동료, 국적 불문 연봉 불문하고 단 한 사람도 못 들어봤어. 다들 겨우겨우 입에 풀칠 하고들 사는 거 같애(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라잖아). 그러나 Economist says: 거짓말 하지 마시게~ 이제 호텔도 그만그만한 데는 안 가겠다고, 통계가 말해 주잖아. 아래 표 보시면 저렴한 호텔이 핑크색으로 하향세. 럭셔리는 반대이지요. 저렴한 호텔 하니까 하나 생각난다. 일본 1억 중산층을 위한 보급형 호텔 브랜드 도요코 인(Toyoko Inn, 東横イン) 되시겠습니다. 와~ 신간센 타고 오사카 출장겸 여행 왔어요. 자 호텔 체크인 하고 피곤해서 자리에 누웠습니다…만 어라 몸을 쭉 펴니 머리가 벽에 닿네. 이번엔 침대의 반대편으로 몸을 수직 이동하니 또 다리가 벽에 닿네. 오, 자는 도중에 자동으로 내 몸이 두 벽면으로 탁구 치겠네요. 그래도 여행이니 숙면은 취했어, 아 상쾌한 아침~ 싱그러운 아침 햇살을 느껴보리라, 창문을 열었더니 바로 옆 동 벽면이 보이는 것이지요. 햇살은 직접 밖에 나가서 쐬도록 합시다.

이코노미스트에서 눈여겨 보고 있는 럭셔리 숙박 여행의 또 다른 트렌드는 철도와 크루즈 입니다. 사진으로 하나씩 보까요? 첫 번째, LVMH가 뷔통의 장인 정신으로 야심차게 내 놓은 Belmond sleeper train (클릭하면 웹페이지로 감). 영국 국내 종단 열차입니다. 거의 중동계 항공 1등석 수준이네.

다음, 요트 - Oriental Express. 출발지는 프랑스. 유럽을 돌아돌아 꿈 속에 나오는 무릉도원으로 간답니다. 정착지에는 돌체 & 가바나, 버버리 등이 출자한 호텔과 비치 클럽이 승객들을 반긴다 하네요.

럭셔리 브랜드 호텔 하니까 하나 생각났다. 두바이 있을 때, 마리나 산책 하다가 다른 구역들하고 확실히 뭔가 틀린 건축물과 요트들이 보이는 것이에요. 이거이 뭘까, 마침 거기에 정박된 10인승 정도의 호화 보트를 닻으로 감아 고정시키던 한 스페인 출신 인부한테 물었어. 여기 좀 특이한데, 뭐 있어? 던져봤더니 여기, 불가리(BVLGARI) 리조트래요. 아 네, 제가 잘못 들어왔군요, 하며 발길을 돌리려다 보트가 자꾸 눈에 걸려 내친김에 더 물어봤어. 이 보트? 어, 이거 주인이 러시아 사람인데 가족들 데리고 러시아에서 두바이로 왔다 갔다 하면서 살어.

이런게 진짜 인생인 것이지요!

럭셔리 숙박 수요의 증가에 비해 명품 시장 자체는 정체를 보이고 있다 합니다. 위 표에서 보듯이, 컨설팅 회사 베인에서 작년에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명품 백 / 신발 / 의류 등은 전년 대비 하락세이고요, 올 해도 2%~5%의 하향 추세가 이어질 것이라 합니다.

그러나 명품이 비싸든, 살림살이가 어려워지든, 카드 값 연체가 되든 말든 꾸준한 수요로 럭셔리 업계 지존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브랜드가 있으니, 네~ 네~ 여러분 다들 짐작하셨을 에르메스 입니다. 다들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을 때 에르메스만 작년 15% 성장했다고 하고요, 이런 추세는 계속 이어져 2030년에는 LVMH 그룹의 매출을 능가할 것이라 하네요. 참고로 LVMH는 가방만 하는 거 아니고 술, 시계, 화장품 등 20~30여개 브랜드가 딸려 있지만 에르메스는 거의 단일 브랜드로 매출이 일취월장하고 있으니 어느 업계든 1등은 꾸준히 성장해 가며 살아 남는 것이군요. 참고로 아래 표는 주요 브랜드의 가방 가격.

이코노미스트가 정리한 에르메스의 업계 평정 이유, 세 가지 들고 있습니다.

  1. 엄격한 생산 업체 & 공급량 제한: 동종 업계에 비해 한참 높은 55% 수준의 물량을 자체 생산 또는 전문 파트너에서 생산합니다. (아마 Made In France이외는 거의 없다는 뜻으로 이해 했습니다) 1837년 창업이래 아직도 동일한 Hermès에서 기업 경영한다 하고요, 소량 생산 원칙입니다.

  2. 노 디스카운트: 경기 부침에 상관없이 매년 6%~7% 가격 인상 합니다. 다른 브랜드의 경우 코로나 풀리며 유동성이 크게 증가해 명품 수요가 급증하자 얼씨구나 가격 팍팍 올리더니 작년부터 경기 둔화 & 수요 쇼크가 와서 지금은 또 디스카운트 하고 엎치락 뒤치락 하는 상황. 명품이 품위없게 주책떨고 말이야!

  3. 자질구래한 거 안 팔기: 이런 경우 있잖아. 평품 샵에 들어갔어. 와~ 물건이 너무들 아름다워 뭐 사긴 사야겠는데 카드 값이 걱정되는 것이죠, 그래서 결국 스카프만 사서 나왔지 뭐에요. 에르메스도 립스틱 같은 거 팔기는 판답니다. “오늘은 이거 샀지만 언젠간 꼭 버킨 백 산다.” 그러나 다른 브랜드들(특히 구찌)은 너무 잡스런 것들 (양말, 아이돌 모자 등) 팔아서 명품 이미지 타락 시켰다 하네요.

정리하다 보니까 사실 이 원칙은 럭셔리 업계 뿐 아니라 IT 및 일반 업종에도 적용되는 것 같아요. 2019년부터 3년간 다녔던 Infoblox라는 실리콘 밸리 회사가 있었어. IT 분야 중에 DNS(Domain Name Service), 즉 www.google.com 같은 도메인 이름을 IP 주소로 바꿔주는 장치인데 인터넷 사용에 필수잖아요. Infoblox는 DNS분야 업계 1위, 점유율 50% 이상입니다. 그러니 에르메스처럼, 매년 10% 정도씩 가격 올려 받았어요. 고객한테는 이랬어: 왜, 사기 싫어? 그믄 딴 거 알아 봐.

교훈: 의사 선생님, 교수님, 자영업자 사장님들, KK Biz Newsletter 발행인인 나도 포함하여, 우리도 에르메스같은 브랜드가 되어야 해요. 그래서 고객한테, 학생한테, 환자한테, 그리고 소비자들한테 너 너 바로 너 아니면 안돼! 라는 소리 들을 수 있도록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