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rner Prize: 이것도 예술이구나

Tracey Emin's My Bed

이번 주는 본론 들어가기 전에 자기계발 관련 훌륭한 블로그 있어 관심있는 분들께 추천 먼저 드립니다. 일본에서 알고 지내던 분 입니다. 일본 GE finance쪽에 계시다가 AWS로 이직후 출중한 능력을 인정받아 미국 본사까지 진출하셨어요. 지금은 강남 언니들의 대부로 봉사하고 계십니다. (Chief Product Officer in 강남언니) 링크는 밑에. 인생 낭비 않고 열심히 사람들 어떤 글 쓰는가, 한 번 들여다 보시기 바랍니다.

자 그럼 오늘도 이코노미스트의 세계로 let’s go! 이번 주 내용은 뭘까요.

오늘은 weekend section - art & culture편입니다! 실은 이코노미스트지가 경제, 정치기사만 보내주는게 아니라 위인들이 남긴 명언도 매일 싣고, 잊을 만 하면 한 번씩 예술 기사도 올려줍니다. 마침 이번 주에는 Tuner Prize기사가 떴어. 못 들어봤지요? 나도 처음 들어봤어. J. M. W. Turner라는 화가를 기리며 영국에서 생겨난 미술계 시상식으로 2년에 한 번씩 열린대요. 여기에 소개되는 작품은, 영화로 치면 선댄스 영화제처럼 젊고 도발적이고 신선하다못해 종종 불쾌함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합니다. 올 해도 이해 불가의 논란 소지 다분한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는데, 그 가운데 Mohammed Sami은 그나마 우리가 봐도 바로 알 수 있겠어. 작품명 After The Storm.

섬뜩하지요.

우크라이나 전쟁 시작 전이었다면 이 그림은, 아마도 어느 더운 날, 사막의 열기를 품고 모래 바람까지 부니 못 견디겠어서 사람 드문 이 카페에 느린 속도로 돌리던 천장 팬(fan)의 그림이었을 것이에요. 옛날 그 영화 Baghdad Cafe의 한 장면처럼. 그러나 당신에게는 탁자 위를 드리운 십자형 그림자가 무엇으로 보이는지요, 또 어떤 상징으로 다가오는지요.

나만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어. 화가가 보내는 메세지는 일관적이지 않을 수 있고, 따라서 어떤 작품은 다양한 해석을 낳기도 하므로 관람자를 두고두고 상기시키며 생각의 전환을 유도하는 매력이 있겠어요.

사실 내가 놀란 작품은 이것이 아니에요. 기사에서 전하기를, Tuner Prize의 작품성 논란은 1997년 Tracey EminMy Bed이 대표적이겠다, 하며 비평가와 관람자 양 측에서 이게 뭐야 이런 건 나도 만들겠다 개 쓰레기다, 같은 소리를 들었다 하지요. 도대체 어떤 작품이었길래, 같이 볼까요?

이전 뉴스레터(https://seoultokyo.beehiiv.com/p/n)에서 한 번 말씀 드렸습니다. 하버드 미대 입학생들의 첫 수업 과제: 미술관 가서 그림 감상하되 움직이지 말고 한 그림 30분 바라볼 것. 주위의 소근거리는 소리에, 그림 앞에서 사진 찍는 모습에, 핸드폰으로의 유혹에 의식의 흐름을 빼앗기지 말고, 작품이 나에게 무슨 말을 걸어오나 끈기있게 기다릴 것: 캔버스 안에 그린 하나하나의 정물과 사람들의 웃고 울고 분노하는 표정과 닭과 고양이와 시들어가는 화초도 다 놓치지 말고, 거기에 다빈치 코드 힌트가 있으니까.

위의 작품 My Bed에서는 어떤 메세지가 전해오는가요? 30분이 길다면 3분이라도 보시고 다음 단락으로 넘어가세요.

ㅎㅎ 사실 나는 예술 문외한이야. 3초도 안 걸리고 바로 작품 해설편 봤지. 마치 오디오 가이드 들으며 박물관 투어 하듯. 자, 우선 침대 위에 놓여진 것 봅니다.

  • 여자 속옷

  • 스타킹

  • 시트에 남은 자국: either from urine or menstruation

  • 베개는 두 개: one must belong to her boy friend

이번에는 시선을 밑으로, 침대 앞 바닥. 계속 집요하게 들여다 봅니다.

  • 담배

  • 술병

  • 치약

  • 벨트

  • 슬리퍼

  • 양초

  • 녹색으로 보이는 탁자 위 물건은 must be condoms

  • 여기 전시물에는 안 보이지만 다른 전시에서는 피 묻은 생리대도 내놓음

구역질 납니다.

구역질 난다고.

아 아 아 그 때 깨달았어. 예술가가 소통하고자 했던 주제가 구역질이었던거야!

작가인 Tracey Emin은 런던의 촉망받은 신예 미술가였다고. 이 작품을 내놓던 1997년은 Tracey가 20대 후반을 보내던 시기. 의례 있잖아, 스타덤에 오르자 대중들의 증폭된 기대를 어떻게 만족할 것인가 두려워지고, 한 편 스스로가 추구하는 예술적 순수성과 고귀함에 어떻게 타협할 것인가, 창의성은 바닥나고, 앞이 안 보여, 나는 이 정도 밖에 안 되나봐, 이렇게 고민하는 날들 가운데, 연인으로 지냈던 남자는 아침에 일어나보니 자취를 감추고 짧은 노트와 참께 연락을 끊어버렸나 봅니다. 나는 이제 완전히 고립되었어.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하기 싫고 해서도 안 될것 같아, 이 두 평 침대를 둘러싼 공간에서는. 그리하여 Tracy는 며칠간, 밖에 나가지도 않은 채 알코올과 니코틴으로 파괴적 자아와 쓰러지듯 대면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사나흘이 지나고 작가는 그래 이제 그만, 자리를 털고 일어났습니다. 세상과 다시 맞닥뜨리기로. 좋아 다시 시작, 문을 나서려는데 본인이 남긴 지난 며칠간의 외롭고 고통스러웠던 시간과 공간의 채취가 바로 뒤에 남아있던 것이지. 그 때 아마 아이디어가 떠올랐겠지요. 나 이렇게 죽다가 살아났다. 시간 예술 음악으로도, 2차원 공간 그림으로도, 그 제한적인 속성들로 인하여 내 인생 최저점을 찍었던 이 삶의 흔적은 온전히 남길 수 없을 것이니 나의 실체를 하나도 덧칠하지 않은 채 보여줄 수 있는 이 침실, My Bed, 그 입체의 면적을 표현의 방식으로 택하자. 그래서 관객들로 하여금 구토를 유발할 만큼 생경하면서도 날 것의 메세지를 전달하자. 이것도 예술이야.

나의 감상평은 이렇습니다만, 다른 예술가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을까요. 아 제가 따로 이코노미스트 위인(偉人) 명언집 스크랩을 해 둔 것이 있는데 거기에 화가들의 어록도 꽤 있었어요. 그들은 이런 조언을 주네요.

아트는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것. 여기서 who he/she is가 아니고 what he/she is, 즉 예술은 내가 누구인가를 드러내는 작업이라기 보다는 내가 무엇인가, 어떠한 생각과 철학으로 빚어진 존재인가를 구현하는 작업. (BTW who is Jackson Pollock? 알고싶으면 뉴욕의 소라 고동 껍질 타고 들어가 구겐하임을 만나세요.)

명언 하나 더 듣겠습니다.

예술가가 하나의 작품을 세상에 내 놓는 여정은 스로를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위의 Tracey Emin도 자기 부정 → 관찰 → 탈아(脱我) → 결국은 자기애(自己愛)의 단계를 거치며 예술적 아이디어가 작품으로 승화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프리다 칼로는 여기에 한 단계를 더 얹어 사랑 충만한 스스로의 예술적 단계는 그 스펙트럼을 단면적 스냅샷에서 삶의 전면적 확대로 넓혀가며 통찰력이 입혀질 것이며, 이를 통해 나의 작품과 예술 세계를 사랑해주는 상대방과의 연결고리가 드러나게 되는 것 같지요.

마지막으로 하나 더. 스스로에 대해 고되고 집요한 관찰, 그 후 사랑으로의 승화, 이렇게하여 관조적이면서도 포용적으로 나의 삶에 대해 반추할 수 있게 됨. 여기까지 왔을 때 클로드 모네는 고개를 숙여 이렇게 고백합니다.